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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시스템 개선을 향한 기나긴 여정, 그 대미를 장식할 5편을 드디어 시작합니다.

 

지난 1편부터 4편까지 우리는 참으로 방대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02년 여름을 붉게 달구었던 달콤한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 나라 일본이 묵묵히 그려온 100년의 거대한 비전을 확인했습니다. 이어서 축구 강국 독일이 촘촘하게 쌓아 올린 견고한 행정 체계와 치밀한 육성 매뉴얼까지 하나하나 짚어보았지요.

 

수많은 국내외 자료를 꼼꼼히 조사하고 밤새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솔직히 제 마음 한구석은 무겁고 답답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남의 집 잔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부러움에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요. 여러분은 지난 글들을 읽으시며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선수처럼 몇몇 천재적인 돌연변이들의 발끝에만 의존할 것인가요? 큰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투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요행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눈부신 성과 뒤에 가려진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흔들림 없이 일정하게 굴러가며 결실을 맺는 한국 축구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오늘 이 마지막 시간에는 뜬구름 잡는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당장 우리가 현실에 적용해야 할 구체적인 변화의 순서와 실질적인 대안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대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철학을 세워라

 

새로운 사령탑이 선임될 때마다 텔레비전 중계를 보며 당황스러웠던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시지요? 어제는 수비 위주의 롱패스를 하다가, 오늘 갑자기 점유율을 높이겠다며 전술과 팀의 색깔이 180도 뒤집히는 촌극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대한축구협회 내부에 외부의 거센 외풍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기술위원회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명확한 문서와 규정으로 남겨야 합니다.

 

독일과 일본의 선진 사례에서 뼈저리게 느꼈듯, 이 명확한 기준은 성인 국가대표팀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U-23, U-17 등 어린 연령별 대표팀부터 성인팀까지 하나의 굵은 줄기처럼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선수들이 상위 연령대로 올라갈 때마다 겪는 전술적 혼란을 줄이고,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낭비 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터뜨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대안: 학원 스포츠의 한계를 넘는 클럽화와 디비전 체계의 완성

 

오랜 세월 동안 체육계의 든든한 뼈대였던 학교 중심의 체제는 이제 분명한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눈앞의 대회 성적에만 목을 매고, 감독 개인의 절대적인 권력에 아이들의 땀방울이 휘둘리기 쉬운 낡은 구조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땀 냄새가 짙게 밴 동네 학교 운동장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를 든든한 기반으로 삼는 유소년 클럽 생태계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하는 한국 축구 시스템 정착이 시급합니다.

 

현재 프로 무대인 K리그1부터 세미프로, 아마추어로 이어지는 디비전 체계를 지금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엮어내는 작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 거대한 피라미드의 맨 밑바탕에 동네 단위의 친목 생활 체육과 유소년 리그를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구조 안에서 마르지 않는 깊은 샘물처럼 재능 있는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 대안: 눈앞의 승리보다 '성장'의 가치를 가르치는 지도자 육성

 

지난 4편에서 깊이 있게 다루었던 독일의 선진적인 육성 가이드라인을 잊지 않으셨지요? 그라운드 위에서 번뜩이는 선수를 길러내려면, 그에 앞서 혜안을 가진 뛰어난 지도자가 존재해야 합니다. 당장 이번 주말 열리는 지역 대회에서 이기기 위한 꼼수 전술이 아니라,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 단계와 예민한 정서적 변화에 맞춘 과학적인 육성 매뉴얼이 전국에 있는 모든 지도자에게 꼼꼼히 보급되어야 합니다.

 

지도자를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과 잣대 역시 180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10대 유소년 대회에서 트로피를 몇 개나 들어 올렸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상위 프로 무대로 무사히 진출하여 기량을 펼치고 있는가"를 지도자 평가의 핵심으로 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이 제도를 도입할 때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엄격한 주의사항 역시 협회 차원에서 미리 규정하고 섬세하게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뜨거운 변화를 촉구합니다

 

긴 호흡으로 이어온 5부작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으며,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께 한 가지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A매치 결과 한 번에 환호하고 분노하다가 돌아서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평범한 주말 오후에 열리는 K리그와 동네 유소년 경기, 그리고 협회가 만들어가는 조용한 행정적인 절차에 지속해서 매서운 눈길을 보내고 애정 어린 목소리를 내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한국 축구 시스템을 굳건히 세우는 첫걸음입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솔직한 제 속마음을 조금 덧붙이고자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다소 늦었더라도 지금 당장 선진적인 문화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운동장 위에서는 스페인 특유의 세밀하고 정교한 패스 플레이를 흉내 내고, 행정실 안에서는 독일의 깐깐한 제도를 맹목적으로 복사하자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유럽의 훌륭한 뼈대를 과감히 들여와 부딪혀 보고,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해 보며 몸소 체득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직접 경험하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땀 흘려 깨지는 과정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야만 비로소 온전한 우리만의 튼튼하고 고유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있어 핑계를 찾기보다는 직접 부딪히고 실행해 보는 것만큼 확실하고 빠른 지름길은 없으니까요.

 

앞으로는 대한축구협회가 이러한 뼈아픈 조언들을 새겨듣고, 흔들림 없는 철학 아래 뚜렷한 방향을 앞장서서 제시하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까지 제법 긴 글을 끝까지 함께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듯, 아시아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세계의 강호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축구 시스템의 찬란한 내일을 가슴 뜨겁게 상상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수많은 과제 중, 그 무엇을 제일 먼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다채롭고 소중한 의견을 편안하게 댓글로 남겨주세요.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소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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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 협회의 독일 축구 시스템 벤치마킹과 선진 축구 구조의 심층 분석

 

역사적 필연성과 선진 축구 시스템의 다차원적 의미

 

현대 축구에서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단순히 11명의 우수한 선수가 만들어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는 자국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 지도자 교육, 프로 리그의 재정적 및 구조적 건전성, 그리고 축구 협회의 고도화된 행정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거대한 생태계의 결과물입니다.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 국가대표팀이 전차 군단 독일을 격파한 사건 (일본 점유율 26.6% 로 승리)은 전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축구 산업 및 행정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일본 축구 협회(JFA)가 반세기 이상에 걸쳐 독일의 선진 축구 시스템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벤치마킹하여 자국의 토양에 이식한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본 축구가 그토록 독일의 축구 시스템을 복제(Copy)하고 학습하려 노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독일 축구 시스템이 지닌 본질적인 장점과 '선진 축구 시스템'이 의미하는 다차원적인 가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선진 축구 시스템이란 단순히 엘리트 선수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구조를 뜻하지 않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풀뿌리(Grassroots) 축구부터, 체계적인 연령별 육성, 프로 리그의 규제, 지도자 양성, 그리고 거버넌스와 첨단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축구가 하나의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본 축구가 왜 독일을 스승으로 삼았는지 그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고, 독일 축구 협회(DFB)와 분데스리가(Bundesliga) 가 구축한 시스템의 구체적인 장점을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선진 시스템이 일본의 클럽 라이선싱, 홈그로운(Homegrown) 제도, 그리고 '재팬 웨이(Japan's Way)'로 어떻게 진화하였는지 상세히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적 기원: '축구 교수' 데트마르 크라머와 뮌헨 커넥션

 

일본과 독일 축구의 교류는 1960년대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일본 축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지도자 영입을 추진했었습니다. 이때 JFA 노즈 유즈루 회장의 초청으로 서독 축구 당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 온 인물이 바로 독일 출신의 데트마르 크라머(Dettmar Cramer) 감독입니다.   

 

1925년 도르트문트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수부대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던 크라머는 161cm의 단신으로 선수 시절 '도르트문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렸으나, 독학으로 전술을 깨우친 축구 지식인이었습니다. 훗날 프란츠 베켄바워로부터 '축구 교수 (The Football Professor)' 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그는 단순히 국가대표팀의 전술만을 지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체육 교사 및 전술 분석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현대적인 훈련 방법론, 전술적 인지도, 공간 활용, 규율 잡힌 팀 조직력을 일본 축구에 이식했습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고,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행정적 유산입니다. 크라머는 일본에 프로 및 세미프로 리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1965년 일본 사커 리그(JSL)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1969년에는 일본 치바현에서 FIFA 최초의 코칭스쿨을 개최하여 지도자 양성 구조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후 그는 서독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이집트 및 미국 국가대표팀을 거쳐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해 1975년과 1976년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 명장이 되었습니다. 일본 축구계는 그의 공로를 기려 2005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습니다.   

 

이러한 크라머와의 역사적 유대감은 오늘날 JFA와 바이에른 뮌헨 간의 강력한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처음 정식 체결되고 2028년까지 연장된 양 기관의 업무협약(MoU)을 통해, 바이에른 뮌헨은 히로시마 인근에 'FC 바이에른 풋볼 스쿨 츠네이시(Tsuneishi)'를 설립하여 유소년 육성 및 코치 교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쿠마가이 사키, 이토 히로키 등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며, 일본의 어린 유망주들이 뮌헨 캠퍼스로 연수를 떠나는 등 크라머가 시작한 교류는 오늘날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선진 축구 시스템의 철학: 삼위일체(Trinity)와 이중 피라미드

 

JFA가 독일로부터 궁극적으로 배우고자 했던 핵심은 당장의 성적 지상주의를 탈피하고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에 집중하는 거시적인 구조였습니다. 일본 축구 협회 기술위원회는 국가대표팀이 세계 1위 국가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위일체(Trinity) 강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 삼위일체란 1) 국가대표팀의 강화, 2) 유소년 발굴 및 육성, 3) 우수 지도자 양성이라는 세 부문이 동일한 철학과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발전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일본은 "풀뿌리(Grassroots) 축구 없이는 국가대표팀의 강화도 없다"는 명제 아래, '재팬 웨이(Japan's Way)'의 핵심 모델로 '이중 피라미드 구조(Double Pyramid Structure)'를 채택했습니다. 한쪽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프로 선수와 국가대표팀이 있고, 다른 한쪽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평생 스포츠로서 축구를 즐기는 지역사회 리더, , 심판, 자원봉사자가 존재합니다. 유소년 단계에서 승리만을 좇아 벤치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낡은 관습을 타파하고, 모든 아이가 축구의 즐거움과 경쟁의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는 것이 이 철학의 근간입니다. 이는 독일 전역에 24,500개의 아마추어 클럽이 지역 협회 산하에 촘촘히 엮여 남녀노소와 장애인 모두에게 축구를 제공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독일 유소년 육성 시스템: 그물망 스카우팅과 완벽한 제도적 통제

 

독일 축구는 유로 2000에서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이라는 치욕을 겪은 후, 국가적 차원의 축구 시스템 개혁인 '확장된 재능 육성 프로그램(Extended Talent Promotion Program)'에 착수했습니다.   

 

1. 재능 육성 프로그램 (Talent Förder Program, TFP)

 

이 프로그램은 프로 클럽 아카데미에 소속되지 않은 아마추어 지역 유망주들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거대한 그물망 시스템입니다. 독일 전역 21개 주립 협회 산하에 349개의 DFB 지원 센터(Stützpunkte)가 촘촘하게 구축되어 있으며, 1,200명의 자격을 갖춘 파트타임 센터 코치들이 지역 유망주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U-12에서 U-15 연령대 (여자는 U-16까지) 의 가장 재능 있는 소년 소녀 약 14,000명이 소속팀 훈련 외에 매주 한 번씩 이곳에 모여 고품질의 개인 맞춤형 추가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역별 훈련 센터 (National Training Centre) 시스템 역시 이 모델을 철저히 모방한 시스템입니다.   

또한 DFB는 아마추어 클럽의 육성 기여를 금전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육성 보상금' 제도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2024/2025 시즌부터 분데스리가 1부 클럽이 아마추어 유소년 선수를 영입할 경우, 선수를 배출한 아마추어 클럽에 5,000유로의 기본금에 더해 선수가 6세 이후부터 소속되었던 각 시즌당 400유로를 추가로 지급해야 합니다. 2부 리그는 2,250유로와 시즌당 200유로, 3부 리그는 1,250유로와 시즌당 100유로를 지급하게 하여 풀뿌리 클럽의 생존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2. 프로 클럽의 유스 아카데미 의무화 (NLZ)

 

독일 개혁의 가장 파괴력 있는 정책은 2001년부터 분데스리가 1부 클럽 (2002년부터는 2부 클럽) 이 라이선스를 발급받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체 유소년 성과 센터(Nachwuchsleistungszentrum, NLZ) 를 의무 운영하도록 강제한 정책입니다. 2024/2025 시즌 기준 독일 내에는 총 58개의 엘리트 남성 NLZ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DFB DFL은 인프라, 연령별 스쿼드 규모, 코치진과 의료진 요건, 학교 연계 방법 등을 세밀히 규정했으며, 이를 어길 시 리그 참가 자격 박탈 및 강등이라는 철퇴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강제적 재투자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일궈낸 황금세대를 배출해냈습니다.   

 

3. 아동 축구의 혁명: 퓨니노(Funino) 시스템 도입

 

DFB 2024/2025 시즌부터 U-7에서 U-9 (G F 유스) 연령대에 '퓨니노(Funino)'라는 새로운 경기 방식을 공식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심판, 챔피언십 테이블 순위 기록, 대형 골대, 그리고 고착화된 벤치 멤버 개념을 전면 폐지했습니다. 22 또는 33 방식(최대 55) 으로 4개의 미니 골대를 사용하며, 코치나 학부모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아이들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매 라운드 후 팀들이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페스티벌 형태로 진행되며, 의무 로테이션을 통해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경기에 출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볼 터치 횟수를 늘리고 헤딩 빈도를 줄여 의학적 안전성까지 도모하는 가장 과학적인 아동 축구 혁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4. 듀얼 커리어: 엘리트 축구 학교와 일본의 학원 스포츠 융합

 

선진 시스템은 선수들의 축구 외적인 미래 (사회적 안전망) 도 책임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독일은 DFB 엘리트 축구 학교 (Eliteschulen des Fußballs) 를 지정해 학업과 축구를 병행하는 듀얼 커리어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SC 프라이부르크는 U-17 이상 선수들이 매주 34시간씩 정규 학교 교육을 받도록 강제하며, 9세 미만의 선수를 프로 아카데미로 스카우트하는 것을 지양하여 아이들의 정서 발달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전국 고교 축구 선수권 등 강력한 학원 스포츠 인프라 (부활동, Bukatsu) 를 전통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JFA는 단순히 유럽 모델로 일원화하지 않고, 'JFA 아카데미 (후쿠시마, 구마모토, 사카이, 이마바리)' 를 설립해 기숙형 엘리트 육성을 진행하는 동시에, 대학 축구를 대기만성형 선수의 인큐베이터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특별지정선수 (Special License Player System)' 제도를 도입하여, 잠재력 있는 선수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소속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지명받은 J리그 클럽의 공식 경기 (J1, J2, J3, 컵 대회 등) 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학원 스포츠와 프로 클럽 아카데미 간의 간극을 완벽하게 메웠다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프로 리그 매니지먼트: J리그로 이식된 분데스리가 모델

 

1. J리그 클럽 라이선스 제도

 

J리그는 독일의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2012년부터 엄격한 '클럽 라이선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평가는 경기(Sporting), 시설(Facility), 인사/조직(Personnel/Org), 법무(Legal), 재무(Financial) 5개 범주, 57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경기 기준(17): 유소년 팀(U-15, U-18) 운영 및 프로 코치진 고용 필수 의무화.   
  • 시설 기준(7): J1 기준 15,000석 이상의 좌석 및 연습 구장 확보.   
  • 재무 및 법무 기준: 합법적 회계 및 재무 건전성 유지, J리그 규정 준수.   

항목들은 A, B, C 등급으로 나뉘며, 독립적인 제3자 기관(FIB)의 심사를 거쳐야만 합니다. 필수인 A등급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라이선스 발급이 거부되어 강등되거나 승격이 불가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2014년 기라반츠 기타큐슈는 2부 리그에서 5위를 차지하고도 홈구장 기준 미달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참가하지 못했었습니다. 다만, 최근 학계 연구에 따르면 J1 J2 리그 클럽의 약 50~75%가 무리한 승격이나 강등 회피 지출로 파산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유럽의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같은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2. 홈그로운(Homegrown)과 로컬 플레이어 제도

 

자국 선수 육성을 강제하기 위한 규정 역시 두 국가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데스리가는 1, 2부 클럽 로스터에 최소 12명의 독일 국적 프로 선수를 보유하게 하며, '로컬 플레이어' 제도를 통해 15세부터 21세 사이 최소 3년을 특정 구단에 소속되었던 선수를 최소 8(그 중 4명은 자 구단 유스 출신 필수) 의무 등록하도록 강제하도록 합니다. 이는 무분별한 용병 수입을 막고 자체 유스 아카데미 투자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도록 설계된 시스템입니다.   

일본 J리그 역시 2019년부터 외국인 선수 등록 무제한 (출전 엔트리만 4~5명으로 제한) 정책을 펴는 대신 강력한 홈그로운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12세부터 21세 사이에 최소 3시즌 (36개월) 이상 해당 팀에 등록된 선수를 홈그로운으로 인정하며, J1 리그를 기준으로 점진적으로 4명 이상 출전 명단에 의무 등록하도록 제도를 강화했습니다.   

 

3. 50+1 규칙과 J리그 백년구상(100 Year Plan)

 

독일 클럽의 가장 큰 특징은 구단이 외부 거대 자본에 사유화되는 것을 막는 '50+1 규정'에 있습니다. 구단 지분의 50%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외부 투자자가 가질 수 없도록 하여 클럽이 지역 팬과 회원들의 소유로 남게 한다는 목적입니다.   

일본은 이를 'J리그 백년구상 클럽' 제도로 승화시켰습니다. JFL (4부 리그) 등에서 프로인 J3 리그로 진입하려는 아마추어 클럽은 단순히 실력만 좋아선 안 됩니다. 클럽은 NPO (비영리법인) 또는 주식회사 형태여야 하며, 해당 지자체 (홈타운) 의 서면 지원 승인, 재무적 독립성, 지역 사회 내 축구 교실 1년 이상 운영, 유소년 육성 인프라 등을 완벽히 갖추어 심사를 통과해야만 프로 무대 진입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두 나라 모두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통제하고 클럽이 지역사회의 공공재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제하는 '관계 지향적 규제 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고의 지도자 양성과 집대성된 인프라

 

1. 헤네스-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와 JFA S급 라이선스

 

선진 축구 시스템의 완성은 세계 최고의 전문 지도자를 길러내는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일 축구의 전술적 두뇌는 '헤네스-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Hennes-Weisweiler-Akademie)' 입니다. 1950년대부터 1. FC 쾰른, 묀헨글라트바흐 등에서 수많은 유망주를 발굴하고 혁신적인 전술을 선보인 전설적인 명장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Hennes Weisweiler) 의 이름을 딴 이 기관은, 분데스리가 1, 2부 감독이 되기 위한 필수 자격인 '푸스발-레어러 (Fussball-Lehrer, UEFA Pro 자격 해당)' 를 발급합니다. 율리안 나겔스만 등 독일의 젊은 명장들이 모두 이 엄격한 커리큘럼을 거쳤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본 축구 협회는 최상위 지도자 자격인 'S급 라이선스'를 제정할 당시 이 'Fussball-Lehrer'의 교육 과정과 시스템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수 체계를 모방하여 자국의 지도자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 집대성된 인프라: DFB 캠퍼스와 JFA 유럽 사무소

 

독일 축구 협회는 2022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1 5천만 유로 ( 2,100억 원) 를 투입해 15헥타르 (49,364제곱미터) 규모의 'DFB 캠퍼스'를 개장했습니다. "세기의 프로젝트" FIFA Forward 프로그램으로부터 350만 달러의 지원을 받았으며, 100년이 넘는 DFB 역사상 최초로 행정 본부, DFB 아카데미, 국가대표팀 숙소, 실내외 훈련장, 최첨단 의료/과학 센터를 단일 지붕 아래 통합해냈습니다. 내부의 거대한 '불바드(Boulevard)' 복도를 통해 700명의 행정 직원, 연구원, 선수, 코치들이 매일 장벽 없이 지식과 아이디어를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 혁신 프로젝트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일본 JFA 역시 자국 내 인프라에 안주하지 않고, 독일 뒤셀도르프에 상설 '유럽 사무소'를 설립하는 대담한 시도를 단행했습니다. 이 사무소는 유럽 진출을 노리는 일본 유망주들의 현지 적응, 구단 네트워킹, 이적 지원 등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선수를 무작정 내보내는 대신 J리그 아카데미에서 철저히 다듬은 뒤 완벽한 타이밍에 유럽으로 이식시키는 파이프라인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여, 일본 선수들이 유럽 주요 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 하며...

 

일본 축구 협회 (JFA) 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여 독일의 축구 시스템을 분석하고 모방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기적 성과나 소수 천재의 우연한 등장에 의존하지 않고, 풀뿌리 아동 축구부터 최고 수준의 지도자 육성, 그리고 프로 클럽의 거버넌스 통제까지 모두 아우르는 거대하고 견고한 프로세스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이라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도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데트마르 크라머가 뿌린 전술적, 인프라적 씨앗을 시작으로, 일본은 독일의 아카데미 의무화 (NLZ) J리그 라이선스에 이식했고, 50+1 규칙에 담긴 지역 상생 철학을 100년 구상으로 승화시켰으며, 퓨니노 같은 아동 발달 철학과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의 지도자 교육 과정을 모두 흡수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선보이는 '재팬 웨이(Japan's Way)'는 독일의 선진 모델에 학원 스포츠 (부활동) 융합이라는 자신들만의 문화적 특수성을 결합해 낸 창조적 복제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축구를 통해 개인의 성장을 돕고, 지역 사회를 통합하며, 궁극적으로 세계 축구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두 국가의 시스템은 장기적인 비전과 구조적 혁신이 국가 축구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증하는 완벽한 학술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가 가야할 길...

 

일본은 유소년 축구, 학원 축구, 프로 축구, 생활 축구, 그리고 국가대표 축구까지 모든 단계의 축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냈습니다. 이를 위해 독일의 선진 축구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오랜기간에 걸쳐 다듬어져 왔습니다. 그 결과물은 2026년 일본의 발전된 축구를 보신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구자철 선수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우리는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알고 있는 만큼을 판단하고, 선택해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축구가 선진 축구를 모르고, 그리고 앞으로도 모른다면, 대한민국의 축구는 앞으로도 발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반드시 일본처럼 독일의 축구 시스템을 모방해야만 한다고 말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축구가 가장 잘 할수 있는 축구의 방향과 철학을 정하고, 그에 가장 부합하는 선진 축구로의 발전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단 기간에 이뤄질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만 우리도 앞날을 기대하고 내다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훌륭한 축구인들과 축구 협회를 통해서 앞으로는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축구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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